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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대한예의

[에세이] 보름나물레시피, 엄마의 시간을 삶아 대접하는 예의

by rba_jin 2026. 3. 2.

1. ‘귀찮음’이라는 파도를 넘어 찾은 엄마의 정성

해마다 친정엄마는 말린 나물을 보내오셨다. 직장 생활에 치이는 자매들에게 불리고 삶는 과정은 그저 고된 노동이었고, 때로는 그 귀한 나물을 남에게 주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내 마음에는 '미네르바' 같은 지혜가 찾아왔다.

누군가는 시골에 계신 엄마를, 살아계신 엄마를 부러워하는데 나는 왜 이 정성을 밀어내려 했을까?

나물을 말리기 위해 쏟으셨을 엄마의 시간과 뙤약볕의 무게를 생각하니, 이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엄마라는 스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아주까리 잎을 기억하는 ‘지성의 유산’

취나물, 고구마 줄기, 호박고지, 무말랭이, 고춧잎... 그리고 다소 질기지만 구수한 아주까리.

도시의 삶 속에서도 아주까리 잎을 알아보고 그 질긴 성질을 이해하는 것은, 내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부유한 '이야기가 있는 럭셔리'다.

여름 더위를 타지 않게 하려는 옛 풍속을 빌려 딸에게 건강을 먹이고 싶어 하시는 엄마의 마음은,

이어령 선생이 말씀하신 '지성을 넘어 영성으로 이끄는 사랑'과 닮아 있다.

 

3. 삶의 무게를 견디는 ‘촉촉한 나물’의 미학

딱딱하게 말랐던 나물이 물을 머금고 다시 부드러워지는 과정은 우리네 삶과 같다.

억척스럽게 버텼던 시간이 4시간의 기다림 끝에 찬물에 씻겨 내려가고, 양념과 만나 조물조물 버무려질 때 비로소 맛이 든다.

마른 나물에 다시물 2~3큰술을 넣고 뚜껑을 덮어두는 '뜸'의 시간. 그것은 무력감과 피로에 지친 우리 영혼을 다시 촉촉하게 만드는 '자기 자비적 선택'의 시간이다.

들깨 대신 참깨를 절구에 직접 갈아 넣으며 고소함을 더하는 그 손길 속에,

나는 엄마의 삶의 무게와 사랑의 함량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 파도의 보름 나물 레시피: 엄마의 정성을 깨우는 법

취나물, 아주까이리잎, 고구마줄거리,호박고지

-기본 손질법

  1. 삶기: 나물을 충분히 삶은 후, 그 물에 그대로 담가 4시간 정도 충분히 불려줍니다.
  2. 세척: 불려진 나물은 찬물에 깨끗이 씻어내고 물기를 꼭 짜서 준비합니다.

아주까리잎을 삶아 제물에 4시간 이상 담가둔다.아주까리는 약간쓴맛이 나는듯..

- 갖은양념 레시피 (나물 1종류 기준)

    • 주재료: 삶아서 불린 나물 적당량
    • 양념: 대파 1대, 국간장 1큰술, 진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설탕 조금, 참치액젓 0.5큰술, 들기름 1큰술, 깨 1큰술 (절구에 간 것)
    • 비법 육수: 미리 끓여둔 다시물 적당량

 -조리순서

  1. 버무리기: 볼에 나물을 담고 준비한 양념을 넣어 손맛이 배도록 조물조물 버무립니다.
  2. 파기름 내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대파를 볶아 향긋한 파기름을 냅니다.
  3. 볶기: 양념이 스며든 나물을 넣고 파기름에 달달 볶아줍니다.
  4. 수분 보충: 나물이 볶아지면 다시물 2~3큰술을 넣고 뚜껑을 잠시 덮어둡니다.
    • Tip: 이 과정이 있어야 마른 나물이 뻣뻣하지 않고 촉촉해집니다.
  5. 마무리: 참깨를 절구에 바로 갈아 넣어 고소한 풍미를 극대화하며 완성합니다.

취나물--가장 좋아하는 나의 최애 나물

 

 

"엄마가 보내온 마른 나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딸의 인생에 닥칠 '무더위(시련)'를 미리 걱정하는 가장 사소하고도 위대한 정의다."

귀찮음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남에게 넘기려 했던 마음을 다잡고, 엄마와 여행 후 '인간에 대한 예의'로 나물을 직접 삶아내며 '웰다잉(Well-dying)'의 준비라 생각하니 나의  귀차니즘이 조금씩 삶의 완성으로 성장해 가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