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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비투스 #골든시니어3

[에세이12] 부끄러운 이름을 흙으로 덮고, 다시 쓰는 ‘리스타트’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온다.실직, 질병, 가족의 부재처럼 나를 무너뜨리는 파도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사회적 약자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어쩌면 미래의 나 혹은 오늘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지난 일주일, 갑작스레 찾아온 갱년기는 나에게 그 사실을 몸소 일깨워 주었다.1. 정신의 등불과 신체의 비명나의 정신은 단단했고 우울증은 이미 책을 통해 극복한 뒤였다.내가 책에 미쳤을때독서를 왜 하냐고 누가 물어보면 딱~나민애 시인의 해석처럼책을 따라 내 별나라를 찾아갔더니, 어느새 그 별나라가 내 안에 들어와 있더라. 였다 하지만 신체는 정직하고도 가혹했다.두통은 발걸음을 묶어버렸고, 정신과 신체가 하나라는 말은 무력한 거짓말처럼느껴졌다.호르몬 처방을 고민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중성으로 살아도 된다".. 2026. 2. 10.
[산문시10] 설국(雪國)의 터널을 지나, 다시 개밥바라기별 아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장면처럼,기차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눈앞에는 온통 하얀 세상이 펼쳐지곤 했다.어린 시절 겨울방학, 판대역에서 내려 외가까지 걷던 그 십 리 길은 나에게는 바로 그 설국으로 들어서는 입구같다.이제는 그 멀고 험했던 길 위로 매끄러운 도로가 나 있지만,내 기억 속의 눈길은 여전히 차갑고도 포근한 원형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도시의 밤은 전등 스위치를 끄듯 갑작스럽게 찾아오지만, 시골의 밤은 다르다.낮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고,밤은 수줍게 앞을 나오며 서서히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그 느릿한 변화의 틈새에서 나는 그리움을 배운다.가본 적도 없는 시골의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보며 묘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아마도 그곳이 누군가의 찬란한 유년을 품어냈던 '커다란 나.. 2026. 2. 9.
[시8] 예감의 그림자 밤새 입안에서는 하얀 이가 우수수 빠지고 안개 자욱한 꿈결 너머로 아버지가 보였다.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직한 ‘음매’ 소 울음 소리,그 울음이 명치 끝을 찔러 가슴이 마구 아팠다.눈을 뜨니 베갯잇은 이미 젖어 있고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 닦을 새도 없이 곁에 누운 엄마를 본다.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저문 강을 건너셨는데꿈속의 아버지는 왜 자꾸만 나를 부르셨을까.꿈이어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창백한 엄마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하지만 온종일 마음은 징 소리처럼 울려 학교 행사 중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집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거짓말 같은 진실을 뒤로하고 달려가는 길,골목 어귀에서 나와 꼭 닮은 표정의 동생을 만났다.불길한 예감은 왜 한 번도 비껴가지 않는지.너도 그랬구.. 2026.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