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의 대화 : 어둠 속에서 빛을 배우다 —
1. 어둠으로 들어가는 용기
북촌의 골목 끝, 작은 전시관 입구 앞에서 나는 한동안 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
이름만으로도 묘한 긴장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라니.
전시장 입구에서 휴대폰과 시계, 반짝이는 귀걸이 하나까지 모두 맡기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빛을 내려놓았다.
빛이 사라지는 동시에, 세상은 갑자기 무게를 달리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안의 진짜 감각을 다시 만나는 시작이었다.
2. 어둠 속의 목소리 — 로드마스터와의 동행
전시장 안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손을 뻗어도 내 손조차 보이지 않는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것은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였다.
“앞에 벽이 있습니다. 손끝으로 천천히 느껴보세요.”
“왼쪽으로 두 걸음, 바닥의 질감을 느껴보세요.”
그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우리 모두의 ‘눈’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는 동안
나는 점점 시각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보이지 않으니, 사람의 목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말의 억양, 숨의 길이, 웃음소리의 울림.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그때 처음으로, 눈이 아닌 귀와 마음으로 사람을 보았다.
3.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이 떠오르다
어둠 속을 걷는 동안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발 킬머(Val Kilmer)가 출연한 영화 〈Landscape Where Love Lingers〉 속 한 대사다.
비가 쏟아지던 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를 피해 뛰지 말아요.
비를 느껴요.
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그 안에서 살아봐요.”
그 말은 마치 어둠 속의 로드마스터가 내게 건네는 말 같았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 안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영화 속 장면처럼, 나는 그날 ‘보이지 않는 비’를 맞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랑도, 삶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연습이라는 것을.
4.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법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확신했다.
“백견이 불여일심(百見不如一心)” —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느끼는 것이 낫다.
어둠 속에서 나는 새로운 ‘시력’을 얻었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의 시력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내 손에 닿을 때,
그 미세한 온도 변화 하나로 그 사람의 성격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숨소리, 조용한 웃음, 작은 속삭임이
세상의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너무 쉽게 ‘보이는 것’에 안심한다.
그러나 진짜 이해는, 보지 않아도 들리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5. 사회복지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다
나는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을 한다.
그래서일까, ‘어둠 속의 대화’는 나에게 단순한 체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복지의 본질을 몸으로 배우는 수업이었다.
우리는 종종 내담자를 ‘보는’ 데 익숙하다.
표정, 옷차림, 환경, 문제 상황…
그러나 진정한 이해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 존재를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공감이며, 그것이 인간 존엄의 실천이다.
어둠 속에서 로드마스터가 내게 보여준 것은
그 어떤 복지이론보다 깊은 배움이었다.
“사람을 도운다는 것은,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복지의 언어였다.
6. 빛으로 돌아오며 — 일상의 기적
100분의 체험이 끝나고 문이 열렸다.
눈앞에 한 줄기의 빛이 들어오는 순간,
세상이 찬란하게 살아 움직였다.
그토록 익숙하던 햇빛이 새삼 눈부셨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진짜 어둠은 눈앞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길가의 나무와 사람들의 웃음이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빛은 늘 있었지만, 나는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비로소 빛을 다시 배우게 된 것이다.

7. 사랑이 머무는 풍경처럼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발 킬머가 눈을 감은 채 여인의 얼굴을 손끝으로 느끼던 그 장면.

그는 시각장애인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을 섬세하게 ‘보았다’.
어쩌면 ‘어둠 속의 대화’는 그 영화의 현실 버전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그 감각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사랑의 형태라는 것.
사랑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느끼는 일’임을 어둠 속에서 다시 배웠다.
8. 결론 — 어둠이 빛을 가르쳐주는 방식
‘어둠 속의 대화’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철학적 체험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잊고 있던 문장을 다시 상기시킨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만남이다.”
나는 이제 안다.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 빛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문이다.
그곳에서 배운 공감의 언어는,
사회복지 현장에서든, 인간관계 속에서든
내가 잊지 않고 품어야 할 또 하나의 ‘내면의 빛’이다.
https://blog.naver.com/s5ulmate/224068298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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