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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선물]옛날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꺼내보며

by rba_jin 2026. 4. 29.

[골든 아비투스] 보여지는 예의와 바라보는 냉소 : 『새의 선물』이 던진 질문

오늘 나는 카페 주인의 눈치를 보며 기어이 맛없게 생긴 햄에그 크레페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인간'이라는 사회적 격자(Frame) 속에 나를 가두는 일,

그것은 서른여덟의 진희가 그랬듯 우리 모두가 매일 치르는 생존의 의식일지도 모른다.

 

1. 왜 다시 ‘어린 시절의 감옥’인가? (자크 프레베르와 앵무새)

자크 프레베르의 시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라는 책 제목으로 탄생한다.

새의선물 주인공 진희의 냉소를  자크 프레베르시와 교차해 잘 맞는 책 제목이지 않나 다시 생각해본다.

 대학시절 읽었던 은희경 책은 내가 '글방'이라는 책 동아리를 하면서 숨가삐 하루만에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자크 프레베르는 아주 늙은 앵무새가 가져다준 해바라기 씨앗을 보며,

해가 다시 어린 시절의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노래한다.

세월이 선물한 평온을 거부하고 왜 굳이 아픔의 공간으로 회귀하는 것일까?

심리학적 관점에서 그것은 '고통의 익숙함' 때문이다.

때로 인간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 안에서 더 안도감을 느낀다.

"불행하다고 생각이 들면 힘이 난다"는 그 역설적인 고백은, 고통이 곧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실재(Reality)였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절박한 생존 신호이기도 하다.

 

2. 서정성이라는 치명적인 결핍

은희경의 소설 속 진희는 냉소를 방패 삼아 살아간다. 세상을 서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상처받는 이유는, 영원한 사랑이나 유일한 진실 같은 '환상'에 면역력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내가 머무는 사회복지의 현장 또한 그러하다.

파편화된 감상에 젖기보다, 차가울 정도로 객관적인 '통합적 시각'을 유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예우할 수 있다. 열두살 아이에 비친  냉소는 어쩌면 세상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선택한, 가장 슬픈 방식의 주체적 방어(拏)였을 것이다.

오늘 나는 내 안의 열두살 진희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3. 상처를 덮어가는 일, 그것이 ‘새의 선물’

삶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덧칠하고 덮어가는 과정이다.

자크 프레베르의 앵무새가 건넨 씨앗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을 응시하며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는 의지' 그 자체이다.

한 지붕 대가족 안에서 '얼굴 두꺼운 며느리'로 살아가는 나의 방식 또한 그렇다.

시어머님의 말씀을 한 귀로 흘리는 냉소는 무관심이 아니라, 내 안의 서정성을 지키기 위해 두른 단단한 껍질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를 분리하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살아내는 나만의 '골든 아비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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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은희경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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