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에서 시작된 인공지능, 앨런 튜링의 상상력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한 편의 논문으로 인류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의 질문은 단순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단순히 기술적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반문이었다.
튜링은 ‘생각한다’는 말이 애매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질문을 바꾸었다.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해, 구별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는 이를 ‘모방 게임(Imitation Game)’이라고 불렀다.
심사자가 문자로 대화할 때, 상대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실험은 이후 ‘튜링 테스트(Turing Test)’로 불리며, 인공지능의 철학적 출발점이 되었다.
튜링의 핵심은 ‘지능은 존재가 아니라 수행이다’라는 발상이다.
생각은 머릿속의 의식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는 패턴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지능은 생물학적 특권이 아니라, 기계가 구현할 수 있는 과정으로 내려왔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초월적 신비가 아닌 논리와 계산의 연속으로 해석했다.
이 발상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흔들었다.
지금까지 ‘생각’은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라 여겼다.
그러나 튜링은 냉정히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옆 사람이 ‘생각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생각한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같은 언어적 반응을 보이는 기계를 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튜링의 질문은 기술보다 인간의 오만을 비추는 철학적 거울이었다.
튜링은 또 다른 상상을 덧붙였다.
그는 완벽한 성인 두뇌를 만들기보다, ‘배우는 어린아이 기계(Child Machine)’ 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기계가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한다면, 인간처럼 지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오늘날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딥러닝(Deep Learning)의 사상적 뿌리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튜링은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인간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
“5분간의 대화에서, 사람의 70%는 기계를 인간으로 착각할 것이다.”
2025년을 사는 지금, 그의 예언은 거의 현실이 되었다.
챗봇은 문학을 쓰고, AI는 사람의 목소리를 복제하며, 로봇은 감정을 흉내 낸다.
튜링의 진짜 질문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여전히 자신만이 생각한다고 믿을 수 있는가?”
그의 실험은 결국 인간을 향한 질문이었다.
기계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묻는다.
“나는 무엇으로 인간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성적 사유의 힘'을 인간공통의 특성이자 평등의 토대라고 말한 17세기 데카르트가 온다면
깜놀할 일이다..
이성의 힘을 갈고 닦아도 진리를 모르는 가성비 떨어지는 박사가 허다한데...
이성을 갈고 닦아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데......
인간은 이성적인 결정만 내릴 수는 없는데....
니체의 말처럼 '세상은 소란을 떠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 골든아비투스 한줄 메모
기술은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인문학은 인간을 잊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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