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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비투스/BOOK_ROAD

“국가는 인간의 삶의 절반을 지배하고, 다음이 부모다.”

by rba_jin 2025. 11. 21.

국가와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민주주의는 선택의 힘으로 자란다

컴퓨터 메모장에 적힌 한 문장.
“국가는 인간의 삶의 절반을 지배하고, 다음이 부모다.”

 2014년 유시민의 북토크에 다녀온 후 기록한 것이다.

 

나의한국현대사 북콘서트

참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인 문장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어떤 국가의 제도와 문화, 어떤 부모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 속에 놓이게 된다.
그 두 가지는 인간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평생 넘기 어려운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유시민 작가의 북토크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국가와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열려 있는 선택이다.”
“민주주의는 선택이다. 역사는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이 말은 질문을 다시 불러온다.
‘그 선택의 기회를 애초에 갖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가난과 가뭄 속에서 ‘선택할 권리’조차 빼앗긴 소녀들

월드비전이 보고하는 조혼(early marriage) 위험 지역의 소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 놓여 있다.

 

  • 극심한 가난
  • 기후위기와 반복되는 가뭄
  • 교육을 받을 기회 부족
  • 여성에게 불리한 관습과 성별 규범
  • 생존을 위해 딸을 결혼시키는 가족의 선택
  • 국가 시스템의 부재 또는 무기력

이 아이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을까?
국가는 그들의 삶의 절반을 지배했지만,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부모 역시 ‘선택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가난과 기근 앞에서 딸의 인생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생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 선택이 ‘조혼’이라는 폭력으로 나타나더라도 말이다.

이때 조혼은 단지 결혼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박탈 · 건강권 침해 · 신체적 위험 · 인권 침해 · 미래 박탈로 이어지는 복합적 구조적 폭력이다.

이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선택의 힘’이라는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유시민이 말한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국가와 부모라는 선택 불가능한 조건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뜻이었다.

조혼 위기의 소녀들을 떠올리면,이 말은 더이상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현실적인 윤리·인권의 과제가 된다.

  • 소녀가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가?
  • 소녀가 어린 나이에 결혼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는가?
  • 가뭄과 기근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가?
  • 국가가 그들의 삶을 지켜주는 토대를 갖추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그냥 “좋은 정치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곧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창밖에서 바라본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발견한 보편적 마음

 

아침일찍 일어나 내 책상위에서  밖을 내다본다. 2층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움직임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들은 각자 고단했지만,
어딘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 덜 외롭고 싶은 마음
  • 덜 두렵고 싶은 마음
  • 풍요롭게 살고 싶은 마음
  • 모순 속에서도 옳게 살고 싶은 마음

이 소박한 마음들은
서울 내 집에 있는 우리 가족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조혼 위기의 소녀들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 학교에 가고 싶다
  • 안전하고 싶다
  • 사랑받고 싶다
  • 내 몸과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이 소박한 마음조차 감히 꿈꿀 수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소녀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단지 ‘국가’, ‘부모’, ‘환경’이라는 선택 불가능한 조건이 그들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우리의 현대사는 “수백만 사람들의 마음의 떨림”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근현대사도 실은
영웅 몇 명이 만든 것이 아니라

수백만 명의 민초들의 갈망, 분노, 희망이 모여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사는 소녀들의 미래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모이면 바뀔 수 있다.

  • 조혼을 막기 위한 국제적 협약
  • 식수 지원과 기후위기 대응
  • 여성 교육 지원
  • 지역사회 인식 변화
  • 법·제도 개선

이 모든 것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선택”이 모여 이루는 변화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 우리가 선택으로 돌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나 혼자 잘 사는 권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선택할 수 없었던 삶에
‘선택의 가능성’을 돌려주는 일이다.

블루스퀘어에서 나온 그 밤 그래서 나는 메모장에 이런문장을 써 넣은 것이다.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직장에서 창밖너머를 보며 읊조린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는 단 하나다.

누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선택의 기회를 잃어버린 세계가 아니라,
태어난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세계.

그 세계를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각자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