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역할에도 감사하는 마음 ― 윤여정의 인생 미학

드라마 〈파친코〉에서 윤여정은 주인공의 노년으로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74세에 누가 나에게 역할을 주겠나.
일이 있으면 해야지.”

이 짧은 한마디에는 배우로서의 철학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이 담겨 있다.
그녀에게 ‘작은 역할’이란 ‘작은 인생’이 아니다.
그저, 지금 주어진 몫을 다하는 일이다.

젊은 날엔 늘 ‘큰 역할’을 꿈꾼다.
하지만 나이 들어 깨닫는다.
작은 역할에도 의미가 있고,
짧은 순간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윤여정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 친구들은 다 누워 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그녀의 말 속에는 시간을 견뎌낸 자의 고요한 자각이 있다.
나이듦이란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모두 누워 있다”는 문장은
잃어버린 이들에 대한 애도이자,
살아 있는 나를 향한 감사의 고백이다.

그녀의 감사는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뜰 수 있고,
작은 일 하나 맡을 수 있고,
누군가 나를 여전히 ‘필요로’ 해준다는 그 사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윤여정이 말하는 삶의 미학이다.

윤여정에게 배역은 단순히 연기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세상 속에 내가 쓰일 자리가 있다는 증거”다.

인간도 그렇다.
사회 속에서, 관계 속에서,
누군가의 필요로 인해 다시 존재를 확인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그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더 깊어지는 일이다.

작은 일이라도,
그 안에서 자신의 빛을 내는 사람 —
그것이 윤여정이 보여주는 ‘존재의 품격’이다.

“작은 역할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인생에서도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 된다.”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정신의 근육이다.

윤여정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다.
몸이 아프고,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세월 속에서도
“그래도 내가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그 마음.

그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예의다.

우리도 나이들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필요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 한마디로 하루를 버텨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숙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배우 윤여정의 인생은 단단하다.
그녀의 ‘감사’는 연기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에서 배어 나온다.

“내 친구들은 모두 누워 있는데,
나는 아직 일할 수 있다.”

이 말은 노년의 체념이 아니라,
삶을 향한 가장 겸손한 찬가다.
감사는 세월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연기력,
그리고 인간이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할 품격이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