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두 번 시작된다. 한 번은 함께하면서.. 한 번은 여행이 끝나고 나서~

아름다운 노후란 단순히 편안한 안식을 넘어,
인간 정신의 가장 뜨거운 결정체인 예술작품과 조우하며 끊임없이 '나'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인천 인스파이어에서 마주한 예술가 거장의 작품은 나에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전율과 성찰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1. 데미안 허스트의 <골든 레전드>: 죽음 앞에 선 찬란한 생명
데미안 허스트의 페가수스 형상, <골든 레전드> 앞에 섰을 때의 그 황홀함을 잊을 수 없다. 신화 속 존재의 몸을 절개하여 그 안의 황금빛 근육과 뼈를 가감 없이 드러낸 이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화려한 순간의 필멸성'을 말한다. 갱년기라는 예기치 못한 신체의 변화를 겪으며 '정신과 신체의 분리'를 절감했던 나에게, 이 황금빛 전설은 "고통마저도 생의 찬란한 기록"이라는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2.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 관조하는 나를 발견하다
파란 유리가 반짝이는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을 보았을 때 느낀 전율은 '반사'에 있었다.
고전적인 조각상 위에 놓인 푸른 구(球)는 주변의 풍경과 그 앞에 선 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었다.
그것은 마치 윤동주 시인이 밤하늘의 별을 헤며 자신의 이름을 써보고 흙으로 덮었듯이,
예술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민낯을 대면하게 하는 성찰의 순간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던 데카르트의 사유가 이 푸른 구 안에서 시각적으로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3. 하우메 플렌자 (Jaume Plensa) – 침묵과 소통의 미학
스페인 출신의 거장 하우메 플렌자는 거대한 인체의 두상이나 형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적 평화와 소통을 노래한다.
인스파이어에서 만나는 그의 작품은 주로 격자 구조나 알파벳, 기호들이 엮여 인체의 형상을 이룬다.
이는 인간이 문자, 언어, 문화라는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진 '사회적 존재'임을 상징한다.
윤동주가 별을 헤며 자신을 돌아보았듯, 플렌자는 침묵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4. 카우스 (KAWS) – <투게더 (Together)>: 서툰 위로와 연대
카우스의 투게더...
카우스의 캐릭터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때로는 소외되고 슬퍼 보이는 이 존재들이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은, "성공보다 중요한 건 함께 살아남는 법"이라 말하는 듯하다.
스트리트 아트에서 시작해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 된 카우스의 작품은 엑스(X)자로 표시된 눈을 가진 캐릭터 '컴패니언(Companion)'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두 존재가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함께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딸의 휴대폰 저장을 '내 삶'이라 고쳐 부르고, 친구들과 "우린 늙지 않았어"라고 위로를 건네며
나는 예전의 사진을 정리하며 나의 파라다이스호텔 '두 번째 여행'의 모습을 <투게더>의 포옹 속에서 찾는다.
5. 로버트 인디애나의 <숫자 9>: 삶의 총량과 마침표에 대하여
로버트 인디애나의 강렬한 숫자 시리즈 중 <9>를 마주하며 깊은 감동을 느낀 이유는
숫자가 지닌 '완성'과 '경계'의 의미 때문이었다.
1부터 9까지 채워져 온 삶의 총량, 그리고 다시 0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그 꽉 찬 충만함.
선배가 "세 살 이후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숫자 9는 오늘 이 순간이 우리 생의 가장 정점이자 찬란한 지점임을 웅변한다.
가난했던 소녀가 이제는 거장의 작품 앞에서 인생을 논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음을,
그 숫자의 곡선이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동시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리스타트(Restart)
이 거장들의 작품이 '동시대 예술'인 이유는 지금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며 우리의 아픔과 기쁨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인스파이어의 화려한 공간 속에서 느낀 예술적 작품들을 통해 내 삶의 온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예술작품을 만나는 노후는 결코 늙지 않는다.
매 순간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청춘'의 마음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하는 친구와 선배가 있어 더 즐거운 공간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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