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보통의 여행의기술에서 건져올린 존러스킨의사유
1.아이들의 그네, 어른의 휴식: 무게보다 깊은 ‘마음의 무게’
텅 빈 공원,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른’이라는 시스템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세상의 물살에 몸을 맡기는 휴식이다.
존 러스킨(1819-1900)이 산업화의 기계적 속도에 반대했듯,‘어른 금지’라는 딱지는
효율성만을 따지는 세상이 우리에게 덧씌운 또 다른 ‘은유의 폭력’일지 모른다.
몸무게가 아이보다 가벼운 어른이라도, 마음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때로 ‘흔들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2. 사진 대신 데생: 소유가 아닌 ‘응시’의 기술
존 러스킨은 왜 사진 대신 데생을 하라고 했을까?(알랭드보통,여행의기술p277-278)
사진은 셔터 한 번으로 대상을 ‘복제’하지만, 데생은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대상을 끈질기게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 창조성의 회복: 기계가 인간의 창조성을 죽인다고 믿었던 러스킨의 말처럼, 데생은 내 손의 근육과 눈의 감각을 사용해 대상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 참여하는 관찰자: 단순히 ‘왔노라, 보았노라’에 그치는 여행이 아니라, 대상을 그림으로써 그 장소의 공기와 빛, 질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러스킨이 말한 진정한 소유이다.
3. 사회적 연대의 뿌리
러스킨이 19세기에 예견한 환경 파괴와 노동 소외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 복지의 철학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아마 그가 산업화에 반대했던 사상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것은 국민연금 개념도 러스킨의 제안이었다. 러스킨은 그의 책 < 마지막 온 자에게까지도>에서 "국가가 시민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 진정한 부(Wealth): 러스킨에게 부란 금전적 소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것(Life)’이었다.
- 국민연금과 사회보장: "이 마지막 온 자에게까지도"라는 그의 외침은,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당연한 책무임을 역설했다. 이는 나의 ‘휴먼 커넥터’ 활동이 지향하는 ‘아름드리나무의 연대’와 이어진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

-참고문헌: 알랭드보통의 여행의기술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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