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의 탄생과 저녁의 귀환: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 던진 질문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는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린다. 그의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은 한 인간의 탄생(아침)과 죽음(저녁)을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숭고한 필치로 그려낸다. 평생 바다와 싸우며 고기를 잡던 어부 '요한네스'의 마지막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생의 종착역인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1. 나 여기 있어, 내 눈을 봐: 고독사를 넘어선 진정한 위로
요한네스는 은퇴 후 여유를 찾았지만, 아내 에르나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다.
소설 속에서 그는 이미 죽은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먼저 간 아내를 마주하면서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고 착각할 뿐이다.
현실에서 그의 죽음은 침대 위 홀로 맞이한 고독사였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오버랩되어 생각난다. 주인공 창희는
고독과 공포 속에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 친구가 되기 위해 장례지도사의 길을 선택한다.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의 절규를 이야기 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면이나 '품위'가 아니라
"나 여기 있어, 내 눈을 봐"라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위로라는 것을 알려주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2. 이반 일리치의 울음과 요한네스의 갈매나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비참했던 주인공을 구원한 것은 그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울어준 어린 아들이다.
요한네스 역시 비록 육체는 홀로였으나, 그의 영혼은 친구 페테르를 따라 길을 나선다.
백석이 노래한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모진 바람과 눈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서 있던 어부의 삶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격랑을 멈추고 평온한 바다로 돌아간다.
3. 죽음은 무섭지만, 삶은 그래서 더 찬란하다
죽음은 단연 무섭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치열하게 살기 위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는 말은 멋지지만,
막상 그 그림자가 갱년기의 통증이나 노년의 그늘처럼 훅 하고 다가오면 막막하고 시린 법이다.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요한네스의 죽음이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가 누볐던 바다, 그리고 그를 마중 나온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 여성들이나 홀로 남겨진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그들이 'One of them'으로 잊히지 않도록 "당신 곁에 우리가 있다"는 연결의 손길일 것이다.
"남들에게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기억하라."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누구나 죽게 마련이야"라는 냉소 대신,
"슬프구나, 저 모습이 나의 미래구나"라는 정직한 슬픔을 가져본다.
욘 포세가 그린 요한네스의 '저녁'은 끝이 아니라, 다시 '아침'으로 연결되는 순환의 고리다.
우리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내 삶' 혹은 '기쁨'으로 고쳐 부르는 이유도,
언젠가 찾아올 그 저녁에 서로의 눈을 맞추며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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