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궤도에서 본 인간 ― 사만다 하비의 『오빗(Orbit)』이 우리에게 묻는 것
『Orbit』(2023)은 2024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단 하루 동안 국제우주정거장(ISS)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미국·러시아·영국·이탈리아·일본 출신)는 하루 동안 지구를 16번 공전하며 해돋이와 해넘이를 반복해서 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중심은 사건이 아니라, 고요한 사유의 움직임이다.
하비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 인간, 시간, 존재, 관계, 고독을 새롭게 탐구한다.

1. 멀리서 봐야 보이는 것들
우리는 늘 바쁘게 살아가며, 발밑의 현실만을 본다.
일과 관계, 자녀, 노후, 건강 걱정으로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나 가끔은 조금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거리가 필요하다.
사만다 하비의 소설 『오빗(Orbit)』은 그 “거리두기”의 극단적 형태다.
그녀는 우주정거장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그곳에서는 하루에 16번 해가 뜨고 진다.
시간은 무너지고, 낮과 밤의 경계는 사라진다.
이때 인간은 묻는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은 은퇴 이후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직장이라는 궤도를 벗어나면,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
2.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오래 남는다.
“어릴 땐 특별한 존재가 되라고 배웠지만,
결국 우리는 완벽히 평범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니다.”
젊은 시절 우리는 “특별한 나”가 되기 위해 달려왔다.
직함, 경력, 성취가 그 증표였다.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평범함’이 오히려 가장 인간다운 형태의 완성임을 깨닫게 된다.
‘특별함’ 대신 ‘연결’을 느낄 때,
‘경쟁’ 대신 ‘함께 있음’을 배울 때,
인생은 오히려 단순해지고 따뜻해진다.
3. 궤도 위의 시간, 인생의 새로운 리듬
우주정거장에서는 낮과 밤이 90분마다 바뀐다.
이 빠른 순환 속에서 비행사들은 “시간”을 잃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더 깊이 **‘지금’**을 느낀다.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다.
직장에서의 규칙적인 시간표가 사라지면,
처음에는 불안하고 낯설다.
하지만 그 공백 속에서 우리는
‘나만의 리듬’을 다시 찾아야 한다.
Orbit의 비행사처럼,
생각을 줄이고, 호흡을 느리고, 하루를 길게 바라보는 일.
그것이 인생 2막의 시간관리다.
4. 지구는 작고, 인간은 연약하다 ― 그러나 아름답다
하비는 지구를 “푸르고 얇은 막”으로 그린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지만, 동시에 덧없다.
이 인식이 바로 겸손의 시선이다.
5060의 삶에서도 우리는 이런 감정과 마주한다.
건강의 변화, 부모의 부재, 관계의 단절…
삶의 유한함을 체감할수록,
우리는 더욱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을 사랑하게 된다.
지구를 위에서 보듯,
나의 인생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고통보다 감사가, 허무보다 평온이 먼저 찾아온다.
5. 인생의 궤도를 다시 설계한다는 것
『오빗』은 거창한 드라마 대신
고요한 사유의 소설이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배운다.
“멀리서 보면, 나는 더 잘 보인다.”
이것은 곧 리스타트 세대의 지혜다.
퇴직 이후의 삶은 더 이상 ‘추락’이 아니라,
또 하나의 궤도 진입이다.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꾸며,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마음으로
‘나’라는 행성의 궤도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6. 결론 ― 생각이 줄어드는 순간, 인생은 선명해진다
하비는 말한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줄어들고 더 명확해진다.”
5060 이후의 인생은 더 많은 것을 쌓는 시기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다.
그때 비로소 삶은 단순해지고,
관계는 따뜻해지고,
하루는 선명해진다.
우주에서 바라본 인간처럼,
우리도 조금 더 멀리서, 조금 더 맑은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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