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기의 사랑은 여전히 중요한가
― 마사 누스바움의 『지혜롭게 나이 들기』를 중심으로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여전히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 마사 누스바움
1. 사랑, 인간의 마지막 역량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은 『지혜롭게 나이 들기(Growing Wisely)』에서
노년의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여전히 할 수 있고, 어떤 존재로 남을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그녀의 ‘역량(capability) 이론’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핵심적 인간 능력이다.
늙음이란 감정의 퇴색이 아니라, 감정의 확장이다.
누스바움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끝나면 인간성의 일부가 사라진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2. 젊은 사랑과 성숙한 사랑 ― 셰익스피어의 두 무대
누스바움은 사랑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두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과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대조한다.
🕊 젊음의 사랑 ― 《로미오와 줄리엣》
이 사랑은 순간의 폭발이다.
숨이 막힐 정도로 뜨겁고, 눈부시지만 짧다.
그들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의 생명력을 증명하지만,
그 생명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젊음의 사랑은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그 끝은 재가 된다.
🔥 성숙한 사랑 ―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여기에는 정치, 명예, 역사, 책임이 얽혀 있다.
젊은 사랑의 ‘순수함’ 대신, 삶의 무게와 현실의 긴장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타오른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걸고 나누는 숙성된 열정이다.
셰익스피어의 두 사랑은 결국
‘시간’이 만든 두 가지 다른 깊이의 사랑을 보여준다.
하나는 순간의 불꽃, 하나는 영원의 불씨.
둘 다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3. 영화 속의 사랑 ― 다이앤 키튼의 용기
다이앤 키튼(Diane Keaton)이 주연한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 2003) 은
중년 이후의 사랑을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작가로 등장한다.
젊은 의사(키아누 리브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랜만에 ‘여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한다.
그녀의 눈빛은 당혹스럽고, 동시에 살아 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랑은 나이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변할 뿐이다.”
젊은 남자의 사랑을 받는 노년의 여성이라는 설정은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낯설고 논쟁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삶을 다시 사랑할 용기’라는 보편적 주제가 숨어 있다.
누스바움의 말처럼, 사랑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을 열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역량”이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느려지지만, 마음의 깊이는 넓어진다.
4. 노년의 사랑, 모험일까 신의(信義)일까
솔 레브모어(Saullevmore)는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의 6장에서 이렇게 묻는다.
“노년에 들어서면 새로운 사랑을 시도해야 할까?
아니면 오래된 사랑에 두 배로 충실해야 할까?”
그는 여기에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단지 이렇게 제안한다.
“사랑이 당신을 성장시키는가?”
노년의 사랑은 새로움이 아니라 ‘성숙의 형태’이다.
같은 사람과의 사랑도, 새로운 사랑도
그 안에서 내가 더 인간적으로 자라난다면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사랑이다.
5. 나이를 초월한 사랑 ― 사회의 금기를 넘다

나이 많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관계는 흔하지만,
반대의 경우 ― 나이 든 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 ― 은 여전히 금기처럼 여겨진다.
왜일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여전히 사회는 여성을 ‘젊음의 가치’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전 서랜던(Susan Sarandon) 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영혼의 온도다.”
사랑은 나이를 재는 숫자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의 문제다.
노년의 사랑은 외모나 경제력보다
영혼의 생기, 감정의 상호성, 그리고 삶을 나누는 유머로 완성된다.
6. 거절의 고통조차 사랑의 자산이다
누스바움은 노년의 사랑이 지닌 또 하나의 힘으로
‘감정의 회복력(resilience)’을 강조한다.
사랑을 잃는 고통, 거절의 상처, 실패의 아픔조차
모두 다음 사랑을 위한 감정의 근육이 된다는 것이다.
“거절의 고통은 사랑을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훈련이다.”
노년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진실하다.
젊은 시절의 사랑이 ‘발견’이었다면,
노년의 사랑은 ‘재발견’이다.
다시 느끼고, 다시 믿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감정의 능력이다.
7. 사랑의 시간 ― 불꽃에서 불씨로
《로미오와 줄리엣》이 젊음의 불꽃이라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는 오래된 불씨다.
불꽃은 찬란하지만, 금세 꺼진다.
그러나 불씨는 느리게 타며 오랫동안 따뜻함을 남긴다.
노년의 사랑은 불씨와 같다.
세상을 밝히는 강렬한 빛은 아니지만,
내 안의 온기를 지키는 조용한 불이다.
그 불을 간직한 사람만이,
진짜로 나이 든 사람이다.
8. 결론 ― 사랑은 나이듦의 철학이다
늙는다는 것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사랑의 형태가 변하는 과정이다.
젊은 시절의 사랑이 “자기 확장”이었다면,
노년의 사랑은 “자기 수용”이다.
그 안에는 이해가 있고, 관대함이 있으며,
인생을 깊이 바라보는 품격이 있다.
“사랑은 노년에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게 하는 마지막 능력이다.”
사랑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를 늙게 하지 않고, 살아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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