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노여움이 훈장이 된 자의 귀환: 레핀과 네크라소프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속 남자의 몰골은 참혹하다. 하지만 네크라소프의 시선으로 보면, 그의 초라함은
조국과 시대를 뜨겁게 사랑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가 된다.

1. ‘슬픔’과 ‘노여움’이라는 사랑의 증명
네크라소프는 무관심과 평온함이야말로 사랑의 결핍이라고 말한다.
- 고단함의 실체: 전쟁과 혁명의 한복판에 섰던 남성에게 '슬픔'은 죽어간 동료들에 대한 예의이며, '노여움'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주체적 저항이다.
- 나르키소스적 몰입: 그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대신, 시대의 아픔에 스스로를 던졌다. 그가 겪은 육체적 고단함은 단순히 배고픔과 추위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깎아 세상을 비추려 했던 '데카당스적 헌신'의 결과다.
2. 귀환한 남성의 ‘부서진 자아’와 보호막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성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무력해진 상태다. "늙음은 벌이 아니다"라는 통찰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 낙오자가 아닌 영웅: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남성이 돌아왔을 때, 세상이 그를 '쓸모없어진 낙오자'로 취급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입이다.
- 인격적 유대의 복원: 그림 속 어머니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은, 전쟁이 파괴한 남성의 인간성을 다시 '상생과 공존'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거룩한 의식이다.
3. 골든아비투스: 고통을 품격으로 승화시키다
네크라소프가 말한 노여움을 간직한 채 살아남은 남성은, 이제 자신의 고단함을 '황금빛 지혜'로 바꿔야 한다.
- 사소한 정의의 확장: 전쟁의 폭력성을 경험한 자만이 평화의 소중함을 절감하듯, 그의 고단했던 과거는 이제 후대를 향한 '선한 영향력'의 뿌리가 된다.
- 총귀(聰)로 듣는 시대의 비명: 시대를 향한 '슬픔과 노여움'을 '열정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또 다른 레핀의 그림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 귀가 밝아진(聰) 자로서, 세상의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사회복지적 직관을 갖게 되는 것이 진정한 골든 아비투스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매끈하게만 살아온 삶이 어찌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우리앞에 먼저간 사람들 , 우리어머니의 눈가에 패인 주름과 거친 손마디는, 이 세상을 뜨겁게 사랑했다는 가장 럭셔리한 훈장이 될 것이다."
'아비투스강의실 > 인문학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진에관하여]사진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0) | 2026.04.07 |
|---|---|
| [밀양]영화를 통해 본 종교적 확신이무서운이유 (0) | 2026.03.25 |
| [에세이]"『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나 영화 <은교>를 통해본 데카당스의 사유" (0) | 2026.03.10 |
| [에세이]연약함의 힘과 셀린 디온이 부르는 치유의 노래 (1) | 2026.03.09 |
| [에세이] 《공산당 선언》에서 <일 포스티노>의 메타포까지 (1) | 2026.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