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슬픈 이유는 단순히 파괴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개인이 가진 '주체적인 삶(拏)'과 '으뜸 물길(沅)'이 무참히 끊기기
때문이다. 자크 프레베르의 하나님 아버지 라는 시를 읽고 종교에 대한 충돌인가 했는데 끝까지 읽어보니 전쟁에 대한 반대운동이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시의 언어를 통과해 한 사람의 슬픔으로 다가올 때의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
이 시를 읽으면 그렇다. 시의 메타포란 위대하다.
1. ‘하늘’의 신비보다 ‘지상’의 실존
프레베르는 하나님께 하늘에 머물러 달라고 간구한다. 이는 신을 거부하는 오만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역설적인 기도다.

- 뉴욕과 파리의 신비: 삼위일체라는 관념적 신비보다, 인간이 일궈낸 도시의 찬란함과 그 이면의 고독이 더 절실하다는 고백
- '파도'의 시선: 추상적인 구호보다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의 배고픔과 슬픔을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영성의 실천이기 때문에 전쟁으로 얼룩진 요즘 이시가 와 닿는다.
2. ‘대포의 무쇠’와 ‘가난의 지푸라기’
자크프레베르는 전쟁의 잔혹함을 차가운 강철(대포)과 힘없는 생명(지푸라기)의 대비로 그려낸다.
- 전쟁의 실체: 거창한 명분(용병, 나으리들) 뒤에 숨겨진 것은 결국 썩어가는 가난한 이들의 생명이다.
- 슬픔의 이유: 내가 느낀 슬픔은, 무고한 이들이 '대포의 무쇠'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지푸라기'처럼 사그라지는 '존재적 허무'에서 기인한 것이다.
3. 타인을 위한 영성적 위로
- 적정한 절망: 프레베르처럼 우리도 때로는 신에게 항변하고 싶어진다. "어떻게 이런 비극을 보고만 계십니까?"라는 질문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슬픔이다.
- 존재적 친절의 가치: 시 속의 '어여쁜 처녀들'과 '늙은 병신들'은 내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우리 이웃들이다. 그들의 비루한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 바로 '구원'의 시작이다.
- 주체적인 평화(拏): 전쟁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든 재앙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거대한 폭력에 휩쓸리지 않고, 내 곁의 작은 생명들을 따뜻하게 붙잡아주는(拏) 것이다.
- 슬픔의 정화: 때로는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세상의 고통을 대신 슬퍼해 주는 것이 '치유의 아비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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