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광의세계
안희연
버려진 페이지들을 주워 책을 만들었다
거기 한 사람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한 페이지도 포기할 수 없어서
밤마다 책장을 펼쳐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나에게 두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몰래 훔쳐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한 페이지의 죽음 하나
너는 정말 슬픈 사람이구나
언덕을 함께 오르는 마음으로
그러다 불탄 나무 아래서 깜빡 낮잠을 자고
물웅덩이에 갇힌 사람과 대화도 나누고
시름시름 눈물을 떨구는
가을새들의 눈물을 떨구는 가을
급기야 눈 사태를 만나
책 속에 갇히고 말았다.

한 그림자가 다가와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빛이 너무 가까이 있는 밤이었다.
안희연 시인의 시를 읽다
기형도의 시를 읽다가
책을 따라 내 별나라를 찾아갔더니, 어느새 그 별나라가 내 안에 들어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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