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온다.
실직, 질병, 가족의 부재처럼 나를 무너뜨리는 파도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사회적 약자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어쩌면 미래의 나 혹은 오늘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지난 일주일, 갑작스레 찾아온 갱년기는 나에게 그 사실을 몸소 일깨워 주었다.
1. 정신의 등불과 신체의 비명
나의 정신은 단단했고 우울증은 이미 책을 통해 극복한 뒤였다.
하지만 신체는 정직하고도 가혹했다.
두통은 발걸음을 묶어버렸고, 정신과 신체가 하나라는 말은 무력한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호르몬 처방을 고민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중성으로 살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는 약물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이 터널을 지날 대안을 찾아야 할 때구나.
2. 좁쌀 가래떡을 빚던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는 서른일곱에 홀로 되어 낱알을 모으고 시커먼 좁쌀 가래떡을 빚으며 우리를 키워냈다.
그 고단한 '키'질 속에서도 알곡을 골라내던 엄마의 인내는,
지금 내가 겪는 갱년기의 혼란을 잠재울 가장 큰 가르침이다.
1980년대 고향에서 동생과 겪었던 가난의 공기,
1990년대 청량리역에서 고향을 향해 비둘기호를 타기 위해 뛰었던 그 절박함 속에
우리를 버티게 한 것은 서로를 놓지 않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3. 함께 살아남는 법, 진짜 리스타트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라지만,
글씨가 작아 '예'와 '아니오'를 누르지 못해 포기하는 어르신들의 좌절을 이제는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지식과 정보의 격차가 마음의 거리가 되지 않도록,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서 한 번 더 알려주는 '촉진자'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이번 나만의 통증을 통해 배운 가장 귀한 갱년기의 '아비투스(Abitus)'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
윤동주 시인이 부끄러운 이름을 흙으로 덮고 파란 잔디가 피어나길 기다렸듯,
나 역시 지금의 통증을 흙으로 덮고 내일의 성장을 기다린다.
개밥바라기별이 가장 먼저 뜨는 고향 하늘 아래서 엄마를 마주할 때,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비움과 채움의 나무로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꽃의 화려함을 탐하기보다,
뿌리 깊은 '삶의 촉진자'로서 누군가의 쉼터가 되는 공감의 나무로 살아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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