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가 꿈꾸는 ‘옥상의 온도’
남편은 가끔 장난 섞인 말투로 내게 말하곤 한다.
당신 시골에서 보낸 시간보다 결혼해서 서울 사람으로 산 햇수가 훨씬 더 길지 않으냐고,
그러니 이제 '시골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만 떼어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요.
전화 한 대 귀하던 시절과 지독하게 가난했던 유년의 이야기는 이제 추억의 창고 깊숙이 넣어두라는 그의 말에,
나는 그저 말없이 웃어 보인다.
하지만 1940년생 어머니가 빚어주던 시커먼 좁쌀 가래떡의 맛과
판대역 십 리 길의 눈부신 설경은 내 영혼의 지문처럼 남아있기에, 나는 여전히 서울이라는 숲속을 걷는 시골 소녀일지도 모른다.
어느 비 오는 날, 공덕동 골목을 걷다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티엔플로우(TNFLOW)'라는 카페를 만났다.
이름처럼 물 흐르듯 부드러운 그 공간에서,
유기농 밀과 생수로 정성껏 빚은 빵 하나를 마주하며 새삼 '좋은 재료로 만드는 좋은 시간'의 의미를 생각했다.
벽에 걸린 오래된 레코드판과 악보들,
그리고 창밖으로 짙어지는 초록빛 정원은 도시의 소음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해묵은 먼지까지 씻어내 주는 듯했다.
연남동과 망원동, 공덕동 일대에 주택을 개조한 카페들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고층 빌딩 숲에서 놓쳐버린 '사람의 체온'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낡은 나무 문과 작은 정원 하나가 삶의 속도를 늦춰주듯,
나 역시 티엔플로우의 인상적인 내부인테리어를 보며 여주 괴테마을의 홈(?)을 꿈꾸기 시작한다.

또한 비 오는 날 클래식이 흐르는 카페 옥상을 보며, 나는 내가 사는 주택의 옥상에도 작은 그네와 화초,
그리고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을 놓는 상상을 한다.
밤이면 여의도 불꽃축제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그곳에서 음악을 듣는 삶,
그것이 내가 바라는 진정한 삶의 온도이기 때문이다.
비록 함께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주택이 낡아 무너진다, 네 집도 아니다"라며
서운한 말씀을 하실 때도 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는다.
서울 하늘 아래 이만큼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여전히 나만의 옥상을 설계한다.
아늑한 카페를 나설 때 내가 깨닫는 것은 결국 가장 편안한 안식처는 '집'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카페의 조명과 음악, 향기에서 얻은 영감은 항상 "우리 집을 어떻게 하면 더 따뜻하게 꾸밀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삶은 결국 내가 머무는 공간의 온도로 완성되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티엔플로우의 여운을 품고 우리 집의 작은 구석을 새롭게 바라본다.
비록 남편의 말처럼 겉모습은 세련된 서울 사람일지 몰라도, 내 마음의 한구석엔 여전히 개밥바라기별이 뜨는 시골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그 시골의 순수함과 서울의 세련된 클래식 선율이 만나는 나만의 옥상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며 새로운 리스타트(Restart)를 꿈꾸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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