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멘토 총량의 법칙: 피구의 공을 잡는 순간, 공격이 시작된다
배울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어쩌면 배울 마음이 아직 영글지 않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처럼, 진정으로 한 수 배우겠다는 겸손한 갈구 앞에 등을 돌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이를 만나며 배움이란 결국 '찾고 구하는 자의 몫'임을 실감한다.
1. 지지자의 두 얼굴: 칭찬과 날카로운 피드백
경력 초기에는 실무 능력만으로도 존재를 증명할 수 있지만, 연차가 쌓이고 삶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우리에겐 반드시 '내부 지지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진정한 지지자가 반드시 입에 발린 칭찬만 건네는 편한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는 스트레스,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피드백, 혹은 감당하기 버거운 거친 업무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나타나기도 한다.
2. 피구의 역설: 공을 잡아야 주도권이 생긴다
삶의 지지자와 멘토를 대하는 태도는 마치 '피구 게임'과 같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스트레스와 시련)이 무섭다고 피하기만 하면, 평생 도망만 다녀야 하는 수비수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정면으로 맞서 그 공을 가슴으로 받아내는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공을 잡는 그 찰나, 수비수였던 나는 비로소 게임을 주도하는 공격수가 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나를 가장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훌륭한 멘토일 수 있다는 뜻이다.
3. 반면교사(反面敎師)도 멘토다
데카르트처럼 세속의 풍파를 피해 은둔하며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이도, 베블런처럼 관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이도 우리에겐 모두 배움의 대상이다. 심지어 누군가를 보며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게 된다면, 그 역시 나에게는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 지독한 가난도, 갱년기의 고통도, 때로는 말귀가 통하지 않아 머리를 아프게 하는 고령의 학습자들도 모두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나에게 날아오는 모든 공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갱년기라는 통증의 공도,
시어머니의 서운한 말씀이라는 공도,
가르치는 현장에서의 막막함이라는 공도 기꺼이 받아내어
나만의 '삶의 온도'를 완성하는 에너지로 바꾸려고 한다.
하우메 플렌자의 작품처럼 침묵 속에 내면을 단단히 다지고, 카우스의 인물들처럼 서로를 기꺼이 껴안으며,
나는 오늘도 '내 삶'인 딸과 함께 이 찬란한 배움의 길을 걷고자 한다.
모든 만남이 멘토이고, 모든 시련이 지지자인 이 길 위에서 나는 늙지 않는 청춘의 마음으로 세 번째 스무살을 향해 전진 할 것이다.
'골든아비투스 > 50+리부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세이19]생각하는 여자는 늙지 않는다 (0) | 2026.02.17 |
|---|---|
| [건강18 ] 식욕이라는 ‘매력적인 개소리’를 이기는 팩트의 과학 (1) | 2026.02.16 |
| [에세이14]배움의 커넥터로 사는 법 (0) | 2026.02.12 |
| [에세이13]시골 소녀가 꿈꾸는 ‘옥상의 온도’ (0) | 2026.02.11 |
| [에세이12] 부끄러운 이름을 흙으로 덮고, 다시 쓰는 ‘리스타트’ (0) | 2026.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