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커넥터로 사는 법: 갱년기의 파고를 넘어 알곡 같은 지혜로
평생 공부하는 시대다.그 흐름 속에서 나는 세대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지식을 전달하는 '눈높이 대화'의 강점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이 능력이 이제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과 맞물려,
다양한 세대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만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특히 나는 나이 든 분들을 가르칠 때 마음이 더 잘 통한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얼마 전 박물관에서 작은 글씨를 꼼꼼히 읽으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 자매는 엄마가 어린 시절 피난길 대신 학업을 이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나누었다.
하지만 차마 "엄마, 지금이라도 검정고시를 보세요"라고 쉽게 말하지는 못했다.
공부란 스스로의 용기와 자기주도적 열망이 최고라지만,
누군가의 든든한 뒷받침 없이는 내딛기 힘든 발걸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실 주변에는 늦은 나이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다니며 나에게 실습을 받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분들을 보면 경외심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이걸 어디에 써먹으시려고 이 고생을 하실까' 하는 속물적인 이중 메시지가
내 안에서 충돌하곤 한다.
이메일 주소를 물으면 "집에 두고 왔다"고 답하시는 어르신들과 마주할 때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리가 지끈 아파 오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낯설고 두려운 법이다.
그 장벽을 넘는 순간
아는 만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필요하다.
특히나 현대 사회에서는 AI와 사람을 연결해 줄 '중간 커넥터'의 역할이 절실하다.
나는 그 연결의 지점에서 어르신들이 디지털의 장벽에 막혀 '예'와 '아니오'를 잘못 누르는 일이 없도록 돕는 촉진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에너지도 무한하지는 않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지난주와 이번 주가 다르다.
갱년기가 '훅' 하고 찾아오니 자신감은 자꾸만 작아진다.
나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공부하시는 노인들 앞에서 내 갱년기의 통증을 꺼내 놓기가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들이 내게 힘이 되어 주시고 있다.
"선생님 아프시면 안 된다"며 귀한 장뇌삼과 토종꿀을 보내주시는 그 따뜻한 손길에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아무런 고통 없이 평탄하게만 지내온 사람보다,
갱년기의 '신체화' 증상부터 삶의 굴곡까지 두루 겪어 본 내가 더 나은 '커넥터'일지 모른다.
내가 경험한 아픔의 노하우는 이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수해 줄 소중한 지혜가 될 것이다.
비록 몸은 작년과 다르지만, 이 시련 또한 내가 더 깊은 '아름다르 나무'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 믿는다.
오늘도 배움의 길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빛을 밝혀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삶은 결국 내가 머무는 공간과 만나는 사람의 온도로 완성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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