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복한 가정은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으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의 문장이 이토록 시리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이번 세 자매의 여행은 그저 풍경을 보는 유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자의 기억 속에 파묻어 두었던 '제각기 다른 불행'의 파편들을 꺼내어 서로의 가슴에 맞추어 보는,
아프고도 따뜻한 복원 작업이었다.

좋은 삶이란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
1. 낱알 속에 새겨진 어머니의 삶의 전쟁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야 비로소 엄마의 어린 시절을 처음 들었다.
1940년생, 전쟁의 포화 속에서 괴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던 소녀.
학교에 가는 대신 동생을 업고 살림을 해야 했던 원망스러운 기억. 아들만 바라보던 외할머니에 대한 해묵은 미움은 엄마의 마음속에 깊은 흉터로 남아있었다.
일찍 혼자가 되어 4남매를 키워내야 했던 엄마에게 가난은 미덕이 아니라, 자식들을 영세민으로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살려내야 했던 비참한 생존의 전쟁터였다.
남들이 이미 수확한 장소에 가서 알곡과 그 안에섞여 있는 티끌을 나누기 위해 키질을 하는 것이다( 이미 여덟 번이나 훑고 지나간 볏짚 사이에서, 엄마는 '키'를 까부르며 남은 낱알들을 모았다고 한다)
키질을 보다 더 잘하려고 키를 어깨위로 높이 들었다고 한다. 바람에 날아가는 쭉정이 사이로 기어이 남겨진 무거운 알곡들.
그렇게 모은 벼 한 한알한알들을 모아 되가되고 말이되어 등에 지고 돌아온 엄마의 가방 속엔 쌀 반, 돌 반이 섞여 있었다.
80년대 그 모진 겨울, 남들은 가래떡 구경도 못 할 때 우리 집 식탁에 올랐던 시커먼 좁쌀 가래떡은,
엄마가 세상의 모진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걸러낸 고단한 사랑의 증거였다.



가족도 말을 해야 안다. 좋은 삶이란 사랑하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
건전한 원칙을 토대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야 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우리의 삶은 아무희망이 없다.
남을 트집잡고 비판하기 보다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가족도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2. 도망친 자와 외면한 자의 참회
여행길 위에서 언니는 도망치듯 서울로 향했던 그날의 해방감을 고백했다.
대학 진학과 함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했던 시골과 가난.
반면 동생은 부뚜막에 앉아 홀로 울어야 했던 상처 입은 어린 날을 꺼내놓았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가해차량이 군인차량이라는 이유로 치료비가 일부밖에 지원안되는 시절
엄마는 치료비를 위해 탄원서를 내야 했던 비참한 현실 속에서 동생이 겪었을 수치심을,
그때의 나는 그저 창피하다는 이유로 귀를 막고 외면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었지만, 각자의 고통에 매몰되어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그 시절의 미안함이 이제야
뒤늦은 참회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3. 단절을 잇는 보청기, 그리고 해마의 청춘
이제 엄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보청기를 두고 오가는 수많은 말들—주파수가 맞지 않아 고생한다, 비싼 건 필요 없다, 자녀들 고생시킨다—은
결국 엄마와 세상 사이의 끊어진 다리를 다시 놓으려는 우리들의 간절한 안간힘일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으면 치매가 온다는 공포 속에서 찾아간 병원,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해마'가 다른 사람보다 10년은 젊다며 치매 걱정은 말라 하신다.
치매질문지에 대한 대답을 너무나 잘하시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꼿꼿이 서 있는 사랑의 기둥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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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만의 ‘워라벨’, 저녁이 있는 행복
나는 삶 자체가 '워라벨'이라 믿는다.
그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일하는 틈틈이 내 몸을 쉴 곳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소박한 태도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친 누군가에게 쉴 곳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의 본질임을 안다.
가끔 힘들 때 반차를 내고 창밖을 보며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동생의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매의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서로를 보듬는 성소(聖所)다.
가족, 기억, 쉼터, 그리고 사랑. 아버지가 부재했던 그 긴 세월 속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서로의 존재였다.
시커먼 가래떡을 씹으며 견뎠던 그 시절의 허기가 이제는 서로를 살리는 단단한 힘이 되었다.
동생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엄마의 평온해진 마음,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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