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곁에 있을 땐 몰랐던 ‘아름드리나무’의 그늘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고달픈 다리를 쉬고 뜨거운 햇볕을 피하면서도, 정작 그곳에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곤 합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7살 어린 나이에 바람으로 떠나보낸 아버지는, 키가 하늘에 닿을 듯 컸던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우리 마음속에 한 그루씩 심겨진 그리움의 형상입니다. “잘했다” 응원해 주는 듯한 바람 소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나무의 오랜 친구였던 바람의 안부를 듣습니다

2. 가난의 풍파를 견디며 뿌리 내린 삶
어머니라는 나무는 참으로 모진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940년생, 전쟁의 포화를 피해 괴산으로 피난 가야 했던 소녀는 학교 대신 애기를 업고 살림을 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여덟 번이나 훑고 지나간 빈 들판에서 '키'를 까부르며 낱알을 모으던 어머니. 그 시커먼 좁쌀 가래떡은 가난이라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자식들이라는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으려 나무가 스스로를 갉아내어 만든 진액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가난이 부끄러워 나무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거친 껍질이 우리를 보호하던 갑옷이었음을 깨닫습니다.

3. 부재 뒤에 비로소 심겨진 마음의 숲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사람들은 "아, 저기에 나무가 있었구나" 탄식합니다. 언니가 도망치듯 서울로 향하고, 동생이 부뚜막에서 홀로 울고, 내가 그 상처를 외면하며 귀를 막았던 시간들. 그 모든 갈등의 시간은 사실 나무가 베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만의 서툰 몸짓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보청기에 의지해 세상을 다시 들으려 애쓰시는 어머니와 기억의 지도를 따라 외갓집 마을을 찾는 여정은, 우리 마음속에 각자 심어둔 그 커다란 나무를 확인하는 의례입니다

4. 강매동 경치에서 찾는 잃어버린 새소리
오늘 우리는 어릴적 동네 비슷한 경치를 찾으며 나무의 오랜 친구였던 바람 소리와 새소리를 듣습니다. 집이며 길이며 밭이며 모두 바뀌어버린 세상 속에서, 가래나무 터와 공동 빨래터만이 수줍게 몸을 낮춰 우리를 반깁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세 자매의 기억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말한 '저녁에 들어갈 집'은 단순히 지붕 있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든 돌아가 쉴 수 있는 내 마음속 커다란 나무 한 그루입니다.
동생의 집이, 그리고 엄마의 평온한 해마가 나의 쉼터로 남아주길 기도합니다.
나무는 베어졌어도 그 향기와 소리는 지워지지 않듯, 우리의 기억은 오늘 선배와 강매동 뚝방길을 걸으며 푸르게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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