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노벨문학상 '아침그리고저녁'

2023년 노벨문학상은 21세기 사뮈엘 베케트라 불리는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

아침 그리고 저녁 ― 죽음을 건너는 언어

1.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 작가, 욘 포세

 

 2023년,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Jon Fosse)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주관 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의 작가” 라고 평했다.

그는 13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이며,‘21세기 사뮈엘 베케트’라 불릴 만큼
침묵과 공백의 미학을 탐구한 인물이다.
그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으며, 반복과 여백으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인간은 말보다 더 깊은 곳 ― 존재와 소멸의 경계― 에 놓인다.

 

2. 『아침 그리고 저녁』 ― 삶과 죽음의 이어짐

 

욘 포세의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Morgon og kveld)』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상징적으로 배치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하나의 원으로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요한네스는 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노인이다.
은퇴 후 소박한 일상을 보내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그 자신도 어느 날 조용히 침대에서 숨을 거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죽은 친구 페테르와 대화하고, 옛 연인과 재회하며, 삶의 습관 속을 계속 걸어간다.

이 소설은 죽음이 삶을 단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죽음은 파국이 아니라, 삶이 다른 시간으로 스며드는 과정이다.
포세의 문장은 마치 파도처럼 잔잔하게 반복되며,그 잔물결 속에서 ‘영혼의 귀향’을 그린다.

 

3. 고독사 ― 21세기의 일상화된 죽음

요한네스는 가족이 근처에 살고 있음에도 홀로 침대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고령화 사회 속에서 죽음을 점점 ‘특별하지 않은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욘 포세는 그런 현실의 고독한 인간 조건을 조용히 비춘다.
죽음을 공포나 비극이 아닌
“삶의 연속적 장면”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죽음의 존엄을 되살린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관계의 형태를 달리한 또 다른 만남이다.

 

4. 품위보다 위로 ― 인간의 마지막 자리

드라마 해방일지의 주인공 창희는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나 여기 있어! 내 눈 봐. 나 여기 있어!”

이 장면은 포세의 소설과 겹친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품위 있는 절차’가 아니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진정한 위로다.

포세의 시선에서 ‘죽음의 품격’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의 존재가 옆에 있는가로 결정된다.
그가 말하는 ‘아침과 저녁’은 결국 삶의 시작과 끝이 아닌, ‘함께 있음’과 ‘떠남’의 변주이다.

5. 말의 한계를 넘어 ― 침묵의 미학

욘 포세는 언어의 끝에서 문학을 시작한다.
그의 작품은 문장보다 호흡, 서사보다 침묵의 리듬으로 읽힌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 ―즉, 죽음, 신, 영혼, 존재 ― 을
언어로 표현하려 시도하지만, 결국 말이 닿지 않는 영역을 인정하는 겸허함을 보여준다.

그의 문학은 삶을 해석하려 하지 않고,그저 지켜본다.
그 고요한 응시는 ‘삶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을 드러낸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죽음을 끝으로 그리지 않는다.
죽음은 단지 또 하나의 ‘아침’이며, 우리가 다른 빛 속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욘 포세의 문학은 이렇게 속삭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은 새로운 존재의 문턱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효율적인 장례와 관리된 슬픔 속에서
‘죽음을 함께 맞이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
욘 포세는 우리에게 묻는다.
“누군가의 마지막에 당신은 함께할 수 있는가?”

그의 작품은 결국 삶을 넘어선 인간의 존재와 위로의 언어에 대한 조용한 기도이다.

 

*참고문헌

1.욘 포세, Morgon og kveld(2000)

2.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2023

3.The Swedish Academy, Nobel Prize in Literature 2023: Jon Fosse Citation and Press Release

4.Samuel Beckett, Waiting for Godot, Faber & Faber, 1952

5.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

6.북클마독토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