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성
김상미
깊이 깊이 후회해
너를 사랑했던 것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너에게 내 시를 보여주었던 것
너랑 영화관에 갔던 것
너에게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사주었던 것
네 품에서 알몸이 되었던 것
아무렇게나 던져진 텅 빈 우주에 너를 초대했던 것
너와 함께 비엔나의 숲속에서 치즈버거를 먹었던 것
너에게 가장 친한 내 친구를 소개했던 것
너 때문에 비 내리는 센강에서 울었던 것
너 때문에 불같이 타오르는 꽃잎 하나가 내게로 떨어졌던 것
너의 모든 말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환하게 웃었던 것
네가 한 모든 약속을 모래로 가득채워 흘려버렸던 것
너를 떠나보내기 위해 나보코프를 읽으며 모나코 나비를 찾아 헤맸던 것
그러고도 네 꿈을 자주 꾸었던 것
그러고도 너와 함께 잘 먹던 꼬투리 완두콩을 아직도 좋아하는 것
그러고도 이런 시를 쓰고 있는 나
그 모든 것을 후회해
깊이 깊이 후회해
소설 《로리타》의 저자로 잘 알려진 20세기의 거장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에게 ‘나비’는 단순한 취향이나 취미를 넘어, 그의 삶과 예술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상징이었다.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고국을 잃고 망명길에 올랐다. 모든 재산과 지위, 고향을 빼앗긴 그에게 어릴 적 러시아 숲속에서 나비를 잡던 기억과 나비라는 존재는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단 하나의 세계'였다.
나비를 채집하여 핀으로 고정하는 행위는 이미 지나가 버린 아름다운 순간(사랑)을 어떻게든 소유하고 영원히 고정해 두고 싶은 열망을 뜻한다. 하지만 박제된 나비는 이미 생명을 잃은 존재이듯, 떠나간 '너'와의 사랑 역시 잡으려 할수록 서글픈 추억으로만 남는다는 비극성을 보여준다.
김상미의 시를 읽다가 나보코프가 유럽망명시절 모나코 근교에서 나비채집을 했다는 부분에까지 찾아서.
.나도 어릴적 오빠를 따라 곤충채집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을 더듬었다.
첫사랑이 아니라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https://www.tiktok.com/@s5ulmate/video/7229483063544220929?_r=1&_t=ZS-98GApoHKSdr..
TikTok · minerva 님
www.tiktok.com
'아비투스강의실 > 인문학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혜] 지옥 같은 마음을 이겨내는 4가지 통찰 (0) | 2026.05.06 |
|---|---|
| [사진에관하여]사진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0) | 2026.04.07 |
| [밀양]영화를 통해 본 종교적 확신이무서운이유 (0) | 2026.03.25 |
| [명화와시]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0) | 2026.03.12 |
| [에세이]연약함의 힘과 셀린 디온이 부르는 치유의 노래 (1) | 2026.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