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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비투스/50+리부트

[에세이9]세자매의 ‘별 헤는 밤’

by rba_jin 2026. 2. 9.

1. 낱알 속에 새겨진 어머니의 전쟁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야 비로소 엄마의 어린 시절을 처음 들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괴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던 소녀.

학교에 가는 대신 애기를 업고 살림을 해야 했던 원망스러운 기억과 아들만 바라보던 외할머니에 대한 해묵은 미움은 엄마의 마음속에 깊은 흉터로 남아있었다.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4남매를 키워내야 했던 엄마에게 가난은 미덕이 아니라,

자식들을 영세민으로 만들어서라도 어떻게든 살려내야 했던 비참한 생존의 전쟁터였으리라.

남들이 이미 여덟 번이나 훑고 지나간 볏짚 사이에서, 엄마는 '키'를 까부르며 남은 낱알들을 모았다고 한다.

바람에 날아가는 쭉정이 사이로 기어이 남겨진 무거운 알곡들.

그렇게 모은 벼 한 말을 등에 메고 돌아온 엄마의 가방 속엔 쌀 반, 돌 반이 섞여 있었다.

80년대 그 모진 겨울, 남들은 가래떡 구경도 못 할 때 우리 집 식탁에 올랐던 시커먼 좁쌀 가래떡은,

엄마가 세상의 모진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걸러낸 고단한 사랑의 증거였다.

2. 외가, 사라진 추억의 빈자리

  외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고향이다.

맏이였던 엄마와 막내였던 외삼촌은 언니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을 만큼 각별했다.

엄마가 일을 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4남매는 외가의 품에서 자랐다.

특히 세 살 때부터 외가에서 지낸 막내는 외할머니가 진짜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 그늘은 깊고도 따뜻했다.

하지만 외삼촌이 결혼하며 외조부모님을 서울로 모시게 되자, 우리의 유년이 깃들었던 그 공간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도에서는 지워졌을지 모르나,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키가 큰 나무처럼 남아 있는 그곳을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함께 추억했다.

3. 도망친 자와 외면한 자의 참회

여행길 위에서 언니는 도망치듯 서울로 향했던 그날의 해방감을 고백했다.

대학 진학과 함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했던 시골과 가난. 반면 동생은 부뚜막에 앉아 홀로 울어야 했던 상처 입은 어린 날을 꺼내놓았다.

사고를 당해 탄원서를 내야 했던 비참한 현실 속에서 동생이 겪었을 수치심을,

그때의 나는 그저 창피하다는 이유로 귀를 막고 외면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있었지만, 각자의 고통에 매몰되어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던 그 시절의 미안함이 이제야 뒤늦은 참회가 되어 가슴을 적신다.

 

4. 나만의 ‘워라벨’, 저녁이 있는 행복

나는 삶 자체가 '워라벨'이라  생각할 정도로 워커홀릭이다.

그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일하는 틈틈이 내 몸을 쉴 곳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소박한 태도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친 누군가에게 쉴 곳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의 본질임을 안다.

가끔 힘들 때 반차를 내고 창밖을 보며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동생의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매의 아픈 과거를 기억하고 서로를 보듬는 성소(聖所)다.

 

5. 엄마, 사랑해요

이제 엄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해마가 다른 사람보다 10년은 젊다며 우리를 안심시키신다.

판대의 물줄기를 보며 나누었던 못다 한 이야기들이 엄마의 젊은 해마 속에 따뜻한 빛깔로 채워졌기를 바란다.

엄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차갑고 잔정 없게만 느껴졌던 엄마의 그늘이 사실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며 만든 것이었음을 이제야 압니다. 아버지가 부재했던 그 긴 세월 속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서로의 존재였습니다. 시커먼 가래떡을 씹으며 견뎠던 그 시절의 허기가 이제는 서로를 살리는 단단한 힘이 되었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다음엔 오빠까지  우리 4남매 함께 해요.

 

아빠와 오빠의 사진-GPT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