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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시8] 예감의 그림자 밤새 입안에서는 하얀 이가 우수수 빠지고 안개 자욱한 꿈결 너머로 아버지가 보였다.어디선가 들려오는 나직한 ‘음매’ 소 울음 소리,그 울음이 명치 끝을 찔러 가슴이 마구 아팠다.눈을 뜨니 베갯잇은 이미 젖어 있고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 닦을 새도 없이 곁에 누운 엄마를 본다.아버지는 이미 오래전 저문 강을 건너셨는데꿈속의 아버지는 왜 자꾸만 나를 부르셨을까.꿈이어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창백한 엄마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다.하지만 온종일 마음은 징 소리처럼 울려 학교 행사 중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선생님, 집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거짓말 같은 진실을 뒤로하고 달려가는 길,골목 어귀에서 나와 꼭 닮은 표정의 동생을 만났다.불길한 예감은 왜 한 번도 비껴가지 않는지.너도 그랬구.. 2026. 2. 8.
[에세이7] 고운 손에 숨겨진 굳은살의 고백 어릴 적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늘 나를 곁에 앉혀두고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셨다.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야기는 어린 내게 참으로 시시하고 재미없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하지만 할머니는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인 양, 매번 간절하고 열정적으로 당신의 고단했던 소녀 시절을 복기하셨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일찍 여읜 어머니와 새어머니, 그리고 동갑내기 의붓자매가 등장한다.새어머니는 친딸에게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애지중지하며, 모든 설거지와 궂은일을 어린 할머니에게 몰아주었다고 했다. "얘야, 그 애는 손이 약해서 설거지 한 번만 해도 손등이 쩍쩍 터져나갔단다.그래서 내가 다 했지. 그런데도 네 할아버지는(친정아버지는) 내가 동생 일을 안 도와준다고 나만 혼내셨어." 할머니는 억울하고 서러웠던 그 시.. 2026. 2. 7.
[에세이6]놓치지 말아야 할 사랑의 온도 영화 의 흑백 화면은 지독하게 쓸쓸하지만,그 속에는 가난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묘한 동질감이 흐른다.1994년, 동생과 함께 머물던 자취방의 공기.명절이면 고향으로 가기 위해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비둘기호를 향해 숨 가쁘게 뛰어야 했던 대학 시절의 풍경이 영화 위로 겹쳐집니다. 표를 구하지 못해 매표원이 올 때마다 화장실로 숨어들어야 했던 그 서글픈 가난의 기억은,이제 거실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영화를 보는 안온한 현실로 바뀌었다.영화 속 샤오샤오는 젠칭에게 말한다. "I miss you." 젠칭은 "나도 보고 싶었어"라고 답하지만,샤오샤오의 진심은 "난 널 놓친 거야"라는 뜻이었다.잡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의 우리일까? 하지만 세상에는 절.. 2026.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