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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비투스73

[book15]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 던진 질문 아침의 탄생과 저녁의 귀환: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 던진 질문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는 21세기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린다. 그의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은 한 인간의 탄생(아침)과 죽음(저녁)을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숭고한 필치로 그려낸다. 평생 바다와 싸우며 고기를 잡던 어부 '요한네스'의 마지막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생의 종착역인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1. 나 여기 있어, 내 눈을 봐: 고독사를 넘어선 진정한 위로요한네스는 은퇴 후 여유를 찾았지만, 아내 에르나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다.소설 속에서 그는 이미 죽은 친구 페테르를 만나고, 먼저 간 아내를 마주하면서도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고.. 2026. 2. 12.
[에세이14]배움의 커넥터로 사는 법 배움의 커넥터로 사는 법: 갱년기의 파고를 넘어 알곡 같은 지혜로평생 공부하는 시대다.그 흐름 속에서 나는 세대의 벽을 허물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지식을 전달하는 '눈높이 대화'의 강점을 발견했다.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이 능력이 이제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과 맞물려,다양한 세대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만의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특히 나는 나이 든 분들을 가르칠 때 마음이 더 잘 통한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얼마 전 박물관에서 작은 글씨를 꼼꼼히 읽으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우리 자매는 엄마가 어린 시절 피난길 대신 학업을 이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나누었다.하지만 차마 "엄마, 지금이라도 검정고시를 보세요"라고 쉽게 말하지는 못했다.공부란 스스로의 용기와 자기주도적 열망이 최고라지만,.. 2026. 2. 12.
[에세이13]시골 소녀가 꿈꾸는 ‘옥상의 온도’ 시골 소녀가 꿈꾸는 ‘옥상의 온도’남편은 가끔 장난 섞인 말투로 내게 말하곤 한다.당신 시골에서 보낸 시간보다 결혼해서 서울 사람으로 산 햇수가 훨씬 더 길지 않으냐고,그러니 이제 '시골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그만 떼어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요.전화 한 대 귀하던 시절과 지독하게 가난했던 유년의 이야기는 이제 추억의 창고 깊숙이 넣어두라는 그의 말에,나는 그저 말없이 웃어 보인다.하지만 1940년생 어머니가 빚어주던 시커먼 좁쌀 가래떡의 맛과판대역 십 리 길의 눈부신 설경은 내 영혼의 지문처럼 남아있기에, 나는 여전히 서울이라는 숲속을 걷는 시골 소녀일지도 모른다. 어느 비 오는 날, 공덕동 골목을 걷다 클래식 음악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티엔플로우(TNFLOW)'라는 카페를 만났다.이름처럼 물 흐르듯 .. 2026. 2. 11.
[에세이12] 부끄러운 이름을 흙으로 덮고, 다시 쓰는 ‘리스타트’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이 찾아온다.실직, 질병, 가족의 부재처럼 나를 무너뜨리는 파도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사회적 약자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어쩌면 미래의 나 혹은 오늘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지난 일주일, 갑작스레 찾아온 갱년기는 나에게 그 사실을 몸소 일깨워 주었다.1. 정신의 등불과 신체의 비명나의 정신은 단단했고 우울증은 이미 책을 통해 극복한 뒤였다.내가 책에 미쳤을때독서를 왜 하냐고 누가 물어보면 딱~나민애 시인의 해석처럼책을 따라 내 별나라를 찾아갔더니, 어느새 그 별나라가 내 안에 들어와 있더라. 였다 하지만 신체는 정직하고도 가혹했다.두통은 발걸음을 묶어버렸고, 정신과 신체가 하나라는 말은 무력한 거짓말처럼느껴졌다.호르몬 처방을 고민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중성으로 살아도 된다".. 2026. 2. 10.
[편지11]딸에게 건네는 엄마의 '갈매나무' 편지 딸아,엄마가 최근에 유튜버 김겨울의 산문집을 읽으며 네 생각을 참 많이 했단다.그 책에는 딱딱한 의자와 문제집, 등급이라는 날카로운 현실 속에서 오로지 '시'만이 숨구멍이었다는 고백이 나오더구나.김겨울이 백석의 시를 빌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엄마의 학창 시절이 겹쳐 보여 마음이 먹먹해졌어. 동시에 네 번민도 보였단다.우리 예쁜 딸도 수능 공부를 하며 그 각지고 아픈 언어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싶어엄마는 김겨울의 글에 너를 투영하며 깊이 감정이입을 했어.늦게까지 미디어에 빠져 있는 네 뒷모습을 볼 때면, 그게 단순히 즐거움이 아니라 고단한 하루 끝에 정 붙일 곳을 찾는 안쓰러운 몸짓 같아 마음이 쓰여.엄마는 네가 백석이 노래한 그 '갈매.. 2026. 2. 10.
[산문시10] 설국(雪國)의 터널을 지나, 다시 개밥바라기별 아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장면처럼,기차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눈앞에는 온통 하얀 세상이 펼쳐지곤 했다.어린 시절 겨울방학, 판대역에서 내려 외가까지 걷던 그 십 리 길은 나에게는 바로 그 설국으로 들어서는 입구같다.이제는 그 멀고 험했던 길 위로 매끄러운 도로가 나 있지만,내 기억 속의 눈길은 여전히 차갑고도 포근한 원형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도시의 밤은 전등 스위치를 끄듯 갑작스럽게 찾아오지만, 시골의 밤은 다르다.낮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고,밤은 수줍게 앞을 나오며 서서히 서로의 자리를 바꾼다.그 느릿한 변화의 틈새에서 나는 그리움을 배운다.가본 적도 없는 시골의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보며 묘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아마도 그곳이 누군가의 찬란한 유년을 품어냈던 '커다란 나.. 2026.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