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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비투스72

[에세이7] 고운 손에 숨겨진 굳은살의 고백 어릴 적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늘 나를 곁에 앉혀두고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셨다.솔직히 말하자면, 그 이야기는 어린 내게 참으로 시시하고 재미없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하지만 할머니는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인 양, 매번 간절하고 열정적으로 당신의 고단했던 소녀 시절을 복기하셨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일찍 여읜 어머니와 새어머니, 그리고 동갑내기 의붓자매가 등장한다.새어머니는 친딸에게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애지중지하며, 모든 설거지와 궂은일을 어린 할머니에게 몰아주었다고 했다. "얘야, 그 애는 손이 약해서 설거지 한 번만 해도 손등이 쩍쩍 터져나갔단다.그래서 내가 다 했지. 그런데도 네 할아버지는(친정아버지는) 내가 동생 일을 안 도와준다고 나만 혼내셨어." 할머니는 억울하고 서러웠던 그 시.. 2026. 2. 7.
[에세이6]놓치지 말아야 할 사랑의 온도 영화 의 흑백 화면은 지독하게 쓸쓸하지만,그 속에는 가난을 통과해온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묘한 동질감이 흐른다.1994년, 동생과 함께 머물던 자취방의 공기.명절이면 고향으로 가기 위해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비둘기호를 향해 숨 가쁘게 뛰어야 했던 대학 시절의 풍경이 영화 위로 겹쳐집니다. 표를 구하지 못해 매표원이 올 때마다 화장실로 숨어들어야 했던 그 서글픈 가난의 기억은,이제 거실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영화를 보는 안온한 현실로 바뀌었다.영화 속 샤오샤오는 젠칭에게 말한다. "I miss you." 젠칭은 "나도 보고 싶었어"라고 답하지만,샤오샤오의 진심은 "난 널 놓친 거야"라는 뜻이었다.잡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날의 우리일까? 하지만 세상에는 절.. 2026. 2. 7.
'한국연극사'의 노장배우들이 떠나기전에 더드레서를 관람하다. 시놉시스(Synopsis) 한국연극사'의 페이지를 채우는 연극배우들이 무대를 떠나기 전에 '더드레서'를 감상1. 노먼의 헌신, 그 이면의 비극노먼은 선생님의 모든 수발을 들며 그를 무대 위에 세우는 '창조주' 같은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노먼의 헌신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었다.파괴적 공생 관계: 노먼은 선생님의 독단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교정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받아내고 유지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결국 그 헌신이 선생님의 오만함을 강화했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독이 되었다.기록되지 못한 존재의 분노: "나에 대해 잘 얘기해 줘"라는 선생님의 유언 같은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작 남겨진 노트에 자신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절규하는 노먼의 모습은 참혹하다. 이는 '보상 .. 2026. 2. 6.
[좋은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 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오늘 저녁 밥은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한강의 시가 나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2026. 2. 5.
[좋은시]윤동주의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 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 2026. 2. 5.
[에세이5] 아름드리나무: 기억을 걷다 1. 곁에 있을 땐 몰랐던 ‘아름드리나무’의 그늘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고달픈 다리를 쉬고 뜨거운 햇볕을 피하면서도, 정작 그곳에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곤 합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7살 어린 나이에 바람으로 떠나보낸 아버지는, 키가 하늘에 닿을 듯 컸던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우리 마음속에 한 그루씩 심겨진 그리움의 형상입니다. “잘했다” 응원해 주는 듯한 바람 소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나무의 오랜 친구였던 바람의 안부를 듣습니다2. 가난의 풍파를 견디며 뿌리 내린 삶어머니라는 나무는 참으로 모진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940년생, 전쟁의 포화를 피해 괴산으로 피난 가야 했던 소녀는 학교 대신 애기를 업고 살림을 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여덟 번이나 훑고.. 2026. 2. 2.
[창작시4]외할머니와 고봉밥 외할머니와 고봉밥어린 날 외갓집 마당에 들어서면할머니는 노각무침 한 접시에하얀 고봉밥을 내오셨습니다. 그릇 위로 꾹꾹 눌러 담아동그랗게 솟아오른 밥줄기엔손주 사랑하는 마음이 찰랑였습니다. 한평생 눈물이 많으셔서자신의 오줌으로 눈을 씻어내며쪽진 머리 곧게 빗어 넘기던 고단한 세월. 외삼촌 따라 서울로 가시던 날할머니 마음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지하수 깊이 파서 길어 올린 그 맑은 수도,숲속 계곡물이 콸콸 쏟아지던 그 마당을 두고. 산골 물소리 뒤로하고 떠나온 길이할머니에겐 못내 한이 되었나 봅니다.만약 그 숲속 마당에 그대로 계셨다면지금도 고봉밥 지으며 우리를 기다리셨을까.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던그 찬란한 계곡물처럼그리움이 자꾸만 마당 끝을 적십니다. 2026. 1. 31.
[에세이3] 좋은 삶이란 가족이란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문장이 이토록 시리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이번 세 자매의 여행은 그저 풍경을 보는 유람이 아니었다.그것은 각자의 기억 속에 파묻어 두었던 '제각기 다른 불행'의 파편들을 꺼내어 서로의 가슴에 맞추어 보는,아프고도 따뜻한 복원 작업이었다.좋은 삶이란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1. 낱알 속에 새겨진 어머니의 삶의 전쟁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야 비로소 엄마의 어린 시절을 처음 들었다.1940년생, 전쟁의 포화 속에서 괴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던 소녀.학교에 가는 대신 동생을 업고 살림을 해야 했던 원망스러운 기억. 아들만 바라보던 외할머니에 대한 해묵은 미움은 엄마의 마음속에 깊은 흉터로 남아있었다.일찍 혼자가 되어 4.. 2026. 1. 30.
[에세이2] 길 위에 멈춰선 시간, 폐기차역을 찾아서 길 위에 멈춰선 시간, 폐역을 찾아서 그 너머의 안부를 묻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똑같은 모양의 지도가 하나씩 들어있는지도 모른다.세월의 먼지가 내려앉아 흐릿해졌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부르는 그곳.나 또한 모처럼 어릴 적 기억의 조각을 찾아 외갓집 마을로 향했다. 구글맵으로 옛 지명을 검색하니 신기하게도 길이 나타난다.디지털의 세상 속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아날로그의 흔적을 따라, 나는 시간이 멈춰버린 곳 ‘판대역’으로 들어섰다.(판대역은 양평과 원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원주판대리에서 양평삼산리로 지명이 바뀐 곳이다) 지자체마다 폐역을 화려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지만, 이곳은 그저 방치된 채 버려져 있었다.쓰레기가 쌓이고 적막만이 감도는 그곳에서 우리를 반긴 것은 다리를 다친 고.. 2026.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