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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윌헌팅] 네 잘못이 아니야 1997년 개봉 당시에는 마음속에 가득했던 암울함(?) 때문에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던 영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상담가가 된 지금,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는 숀 교수의 말은 이제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굳게 닫힌 문을 여는 열쇠임을 알게 되었다.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영화의 메시지를 "그냥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영화 속 숀 교수는 ‘윌’에게 책으로 배운 지식이 아닌, '직접 경험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내가 친구와 시스티나 성당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에 대해 묻는다면 넌 전기를 읊어대겠지만, 시스티.. 2026. 2. 7.
[더 드레서5]'기억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시놉시스(Synopsis) 1. 노먼의 헌신, 그 이면의 비극노먼은 선생님의 모든 수발을 들며 그를 무대 위에 세우는 '창조주' 같은 역할을 자처했다. 하지만 노먼의 헌신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었다.파괴적 공생 관계: 노먼은 선생님의 독단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교정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받아내고 유지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결국 그 헌신이 선생님의 오만함을 강화했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독이 되었다.기록되지 못한 존재의 분노: "나에 대해 잘 얘기해 줘"라는 선생님의 유언 같은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작 남겨진 노트에 자신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절규하는 노먼의 모습은 참혹하다. 이는 '보상 없는 헌신'이 한 개인을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2. '기.. 2026. 2. 6.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 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 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너와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오늘 저녁 밥은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한강의 시가 나를 책상으로 이끌었다. 2026. 2. 5.
[시]윤동주의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 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 2026. 2. 5.
[에세이5] 아름드리나무: 기억을 걷다 1. 곁에 있을 땐 몰랐던 ‘아름드리나무’의 그늘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고달픈 다리를 쉬고 뜨거운 햇볕을 피하면서도, 정작 그곳에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곤 합니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그리고 어머니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7살 어린 나이에 바람으로 떠나보낸 아버지는, 키가 하늘에 닿을 듯 컸던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우리 마음속에 한 그루씩 심겨진 그리움의 형상입니다. “잘했다” 응원해 주는 듯한 바람 소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나무의 오랜 친구였던 바람의 안부를 듣습니다2. 가난의 풍파를 견디며 뿌리 내린 삶어머니라는 나무는 참으로 모진 땅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940년생, 전쟁의 포화를 피해 괴산으로 피난 가야 했던 소녀는 학교 대신 애기를 업고 살림을 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여덟 번이나 훑고.. 2026. 2. 2.
[창작시4]외할머니와 고봉밥 외할머니와 고봉밥어린 날 외갓집 마당에 들어서면할머니는 노각무침 한 접시에하얀 고봉밥을 내오셨습니다. 그릇 위로 꾹꾹 눌러 담아동그랗게 솟아오른 밥줄기엔손주 사랑하는 마음이 찰랑였습니다. 한평생 눈물이 많으셔서자신의 오줌으로 눈을 씻어내며쪽진 머리 곧게 빗어 넘기던 고단한 세월. 외삼촌 따라 서울로 가시던 날할머니 마음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지하수 깊이 파서 길어 올린 그 맑은 수도,숲속 계곡물이 콸콸 쏟아지던 그 마당을 두고. 산골 물소리 뒤로하고 떠나온 길이할머니에겐 못내 한이 되었나 봅니다.만약 그 숲속 마당에 그대로 계셨다면지금도 고봉밥 지으며 우리를 기다리셨을까.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던그 찬란한 계곡물처럼그리움이 자꾸만 마당 끝을 적십니다. 2026. 1. 31.